문종실록) 정창손의 인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건.
신 등은 또 생각하기를, 여막(廬幕)에 거처할 때에 마땅히 시급히 할 일은 장사(葬事)뿐인데 불당(佛堂)의 역사(役事)는 무엇이 정치에 도움이 되기에 삼농(三農)137) 의 시기에 서두르고 계십니까? 이른바 방반 유철(放飯流歠)하면서 〈물고기를〉 이빨로 끊어 먹지 아니함을 물으며, 3년의 상복(喪服)을 입지 않으면서 시마(緦麻)·소공(小功)의 상복을 살피는 격(格)입니다. 대저 불씨(佛氏)의 해독은 어찌 신(臣)의 쓸데없는 말을 기다리겠습니까마는, 우선 눈으로 직접 본 일을 들어서 감히 몽매(蒙眛)한 소견을 말씀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재가(裁可)하소서."
승지(承旨) 정이한(鄭而漢)은 대간(臺諫)·집현전(集賢殿)·성균관(成均館)과 삼관(三館)의 생원(生員) 등이
상서(上書)하여 정파(停罷)하기를 청하였는데도 임금이 오히려 윤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문득 얼굴을 붉히어 말하기를,
"성상께서 바야흐로 애통하고 박절하여 이 일을 하시는데, 여러 신하들이 어찌 임금의 총명을 번거로이 소란하게 하기를 이같이 하는가?"
하니, 정창손(鄭昌孫)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이미 이빨에 피를 물들였구나."
하였다. 정이한(鄭而漢)이 아첨하기에 힘써서 벼슬이 승지(承旨)에 이르게 되었던 까닭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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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1권, 문종 즉위년 3월 5일 기유 2/6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성균관 생원 탁중 등이 불사의 혁파를 상서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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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정리하자면,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하자 슬픔에 빠진 문종이 불당을 짓는 등 삼년상과 함께 불사를 일으키니
여기에 성균관 유생들이 상소를 올리고 대간이 나서
아니 삼년상 치르시면 치르는 거지 도대체 왜 불사를 일으키냐고 따졌는데
이를 들은 승지 정이한이
얼굴을 붉히며(분노하거나 슬퍼하며) 성상께서(문종) 얼마나 슬프면 이렇게 하는데 임금의 슬픔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탄식하자
그 말을 들은 정창손이 이빨 까서 출세하려는 거냐고 비꼰 것. 그리고 실록에서는 정창손 편을 들며 정이한을 아첨꾼으로 깎아내렸는데..
사실이 아니다.
정작 정이한은 문종이 상당히 아낀 신하로 승지에 이르러서 주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
거기다가 황보인의 사람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문종 ~ 단종 실록에서는 안 좋게 평가를 내려
'아첨하기를 힘썼다.'고 적은 것.
그런 정치적 의도와 일치해서인지 굳이 정창손이 정이한을 비꼬는 말은 그대로 실어 놨는데,
덕분에 정창손의 인성을 잘 알 수 있게 해줌.